"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총이다. 복이다. 자연스런 일이다."
"하늘로부터 주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본디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이 늙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디부터 그리로 가게 되어 있는 길을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늙는 것을 싫어할까요?"
"모든 사람이 다 그러지는 않는다. 오히려 늙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늙기를 마다하는 자나 늙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자나 자연스럽지 못한 점에서는 같다. 사람들이 늙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자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그런다고 해서 늙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죽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늙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미망(迷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손바닥으로 가리거나 두 눈을 감아서 막아보려고 하는 자들과 같다. 눈을 감으면 어두워지니까 햇살을 막은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착각이다. 감은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누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느냐?"
"늙음이 어째서 은총이요 복입니까?"
"늙음이 어째서 은총이 아니고 복이 아니냐?"
"기운은 쇠진하고 이빨은 빠지고 걸음은 비틀거리고 눈과 귀는 흐릿해지고 살가죽은 늘어지고 주름살은 깊게 패이고 머리는 벗겨지고...... 온 몸이 흉물스러워집니다. 그래도 그것이 은총이고 복입니까?"
"기운이 쇠진하고 이빨이 빠지고 걸음이 비틀거리고 눈과 귀가 흐려지고 살가죽이 늘어지고 주름살이 패이고 머리가 벗겨지는 것이 어째서 흉물스러우냐? 누가 그 모양을 흉물스럽다고 규정했느냐?"
"누가 그랬다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
"'모두'라는 말을 쉽게 하지말아라.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아주 많이 있다. 사람의 늙은 모습을 흉물스럽게 보는 눈도 있지만, 존경스럽게 보는 눈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벗겨지고 살가죽이 늘어지는 겉모양만 가지고 그것이 '늙음'의 전부라고 생각하느냐? 그와 같은 겉모습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그 보이지 않는 내용에 늙음의 진면목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
"사람들은 늙은이의 지혜를 이야기하더군요."
"네 생각은 어떠냐?"
"모든 늙은이가 속에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더욱이 요즘 같은 때에는 늙은이들이 오히려 더욱 어리석고 욕심 사납고 괴팍스런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병이 들면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제 본디 모습을 잃게 마련이다. 네가 말한 어리석고 욕심 사납고 괴팍한 늙인이들은 병든 늙은이들이다. 젊은 시절에 든 병을 고치지 않았기에 늙어서 말 그대로 고질(痼疾)이 된 것이다."
"그런 늙은이들은 도무지 회생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병이란, 병이기 때문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앓는 자가 늙었든 젊었든, 회생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어떠냐? 병들지 않고 건강한 늙은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라. 기운이 쇠진하니까 동작이 느려지고 동작이 느려지니까 옛날 같으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하여 세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을 새삼 발견하고 놀란다. 이빨이 빠지니까 질긴 살코기를 먹지 못하고, 살코기를 먹지 못하니까 마음은 더욱 착해진다. 걸음이 비틀거리니 멀리 가지 않고, 멀리 가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욱 깊게 세상을 안다. 노자도 이르기를 멀리 가면 갈수록 세상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노자, 그 사람이 참으로 늙음의 은총과 복을 안 사람이었다. 눈이 흐려지니 자질구레한 세상사를 보지 않게 되고, 그래서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높아진다. 귀가 어두우니 시끄러운 소음에서 해방되어 침묵의 통로로 하늘나라 소식에 닿는다. 이것이 늙음이다. 어찌 은총이요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데 왜 모든 늙은이가 그렇게 늙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어떻게 늙고 싶으냐?"
"저는 제대로 늙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늙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제대로 늙을 수 있을까를 묻지 말고,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제대로 살 수 있을까를 물어라. 너에게는 날마다 그날 하루가 허락되어 있을 뿐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오늘 하루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기꺼이 받아들이되 아무것도 움켜잡지 말고 아무것에도 움켜잡히지 말아라. 그것이 제대로 늙는 비결이다."
제대로 늙는 비결 전문..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음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길을 알려주고 있다.
늙음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으라고...
역시 책은 내 삶을 비춰주는 등불이다. 안내자이다.
지금도 쓸쓸하냐...p.65~71 (0) | 202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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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쓸쓸하냐..p.54~64 (0) | 2020.06.09 |
지금도 쓸쓸하냐..p.23~37 (0) | 2020.06.04 |
지금도 쓸쓸하냐 p.7~22 (0) | 2020.06.03 |
지금도 쓸쓸하냐 - 이아무개 (0) | 2020.06.03 |